Page 123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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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 排方外之談 . 條牒如左, 謹以仰呈. 若少參聖旨, 願勅存記 , 如其有
差, 伏承指授.
[5] ① 「열반무명론」에는 아홉 번의 질문과 열 번의 대답이 있습니다.
여러 경전에서 널리 문장을 인용해 증거로 삼고 비유를 통해 폐하가 말씀
하신 이름도 없는 열반의 이치를 기술했습니다. 어찌 감히 폐하의 신묘하
신 마음에 관련되고, 폐하의 심원한 뜻을 헤아려 교리와 계합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그윽한 가르침에 들어가는 문을 논의하고자 했
고, 학도들에게 깨우쳐 주고자 했을 따름입니다. 폐하가 안성후에 내려준
편지 끝 부분에 “여러 대가들이 열반을 해석하는데 모두들 텅 비어 공적
해 성인이 없다고 말했다. 나(요흥)는 항상 이 설명이 현실과 이치와 크게
동떨어져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난다고 여겼다. 만약 성인이 없다면 열반
을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진실로 영명하신
가르침입니다! 참으로 영명하신 가르침입니다! ② 대저 깨달음은 뚜렷하
게 드러나지 않으나 의미는 매우 깊고, 그 가운데 정수가 있습니다. 만약
성인이 없다면 누가 깨달음과 더불어 소요逍遙하겠습니까? 최근 여러 학
도들이 (성인이 없다는 말을 듣고) 깨달음에 이르는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주저하지 않음이 없고, 이 종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의심하지 않음이 없지만, (누구도) 그것을 바로 잡아 주지 않았습니다. 다
행히 폐하의 고귀한 판단을 만나 종도들이 의심을 ‘확’ 찢어버리고, 많은
29) 방외지담方外之談은 『장자』 「제물론」편에 나오는 말이다. 즉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가리킨다.
30) 양나라 혜교가 찬술한 『고승전』 권제6 「승조전」에 따르면, 「열반무명론」을 읽은 요흥은 “정성스럽게
쓴 회답을 통해 「열반무명론」을 매우 칭찬했다. 즉시 글을 베껴 아들과 조카들에게 반포하도록 명령
을 내렸다.”고 한다. “興答旨慇懃, 備加贊述. 則勅令繕寫, 班諸子姪.” [南朝梁]慧皎著 湯用彤校注,
『高僧傳』, 北京:中華書局, 1992,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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