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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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② 그러한 즉 성인은 천하에 계셔도 고요히 없는 것과 같고, 집착
도 없고 논쟁도 하지 않는다. 인도하지만 앞서지 않고, 감응해 뒤에서 응
한다. 마치 깊은 계곡의 메아리 같고, 밝은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다. 마
주해도 붓다가 온 까닭을 모르고, 뒤따라가도 붓다가 가는 까닭을 모른
다. 희미하게 있는 듯이 보이나 없고, 아스라이 존재하나 없다. 움직일수
록 더욱 고요하고, 숨을수록 더욱 드러난다. 그윽한 곳에서 나왔다 그윽
한 곳으로 들어가며, 변화해 일정함이 없다. 유여열반 무여열반이라는 칭
호는 교화하는 대상의 근기가 다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자취가 나
타나면 ‘태어남’이고, 자취가 사라지면 ‘사라짐’이다. ‘임시적인 이름’이 생
기면 유여열반이라 하고, ‘임시적인 이름’조차 사라지면 무여열반이라 한
다. ③ 그러한 즉 유여열반 무여열반이라는 칭호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
름 없는 가르침을 어디에서들 이름 붙이지 못하랴? 그래서 깨달은 사람
은 모난 곳에 머무르면 모난 모양이 되고, 둥근 곳에 머무르면 둥근 모습
이 된다. 하늘에 머무르면 하늘이 되고, 사람이 있는 곳에 있으면 사람이
된다. 하늘도 될 수 있고 사람도 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니 하늘이나 사
람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과연 하늘도 사람도 아니기에 능히 하
늘도 되고 사람도 될 수 있다. 중생을 교화함에 감응하지만 인위적으로
구제하지 않고, 가르침을 베풀지만 억지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가르침을
베풀지만 억지로 설명하지 않기에 그보다 넓게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없
고, 감응하지만 인위적으로 구제하지 않기에 그보다 크게 구제하는 것은
없다. 그보다 크게 구제하는 것이 없기에 작은 성취로 되돌아오고, 그보
다 넓게 베푸는 것이 없기에 이름 없는 곳으로 귀결된다. ④ 경전은 “깨
달음은 생각으로 알 수 없다. 높아서 너 높은 것이 없고, 넓어서 끝을 알
수 없다. 깊은 연못 같아 바닥이 없을 정도이며, 깊어서 깊이를 헤아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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