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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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6처로 돌아가기로 한다. 기무라가 이
           명색=객관, 식=주체
                                  해하는 명색은 6처의 내적 측면(안·이·비·
           설·신·의)에 대하여, 그것들의 핵심적인 작용을 하고 있는 심신의 결합

           체라는 것이 된다. 그러면 명색과 식의 관계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식도 본래 명색 속의 일부이지만, 명색을 인식의 체로서 취급
                하는 한, 식은 그 중심적인 것으로 따라서 명색 전체의 성립은

                이것에 의존하여야 한다.” “이 점은 마치 가족은 부부나 자녀
                등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중심은 주인인 것과 같다. 따라서 달

                리 말하면 식이 성립하는 조건은 객관으로서 명색이 있는 것에
                의존하는 것으로, 이것을 떠나서 식만이 홀로 존재하는 일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이 인식주체(식)와 객관(명색)의 밀접한 관계야 말로 ‘식↔명색’이라는
           상호 의존적 관계의 이유이며, “앞에서 이미 인용했듯이 불타는 식과 명

           색과의 관계를 마치 갈대단이 서로 의존해 있는 것과 같이 설한 것도”
           “식과 명색과의 상호 관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러

           한 인식론적 입장에서 말한 것이라고 한다(「사실적 세계관」 제5장 5절).
             바로 뒤에서 살펴보지만, 기무라는 유부의 삼세양중설에 낮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태생학적 해석은 채택하지 않고, 현재에도 채
           용하고 있지 않다. 그렇긴 하지만, 명색이 정신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의

           결합이라고 간주하고 더욱이 식과 명색과의 관계가 주관과 객관의 상의
           관계로서 파악되었을 때 거기에는 어떤 형태의 ‘적극적인 주체성’이 상정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주체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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