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P. 114

본다. 와츠지는 이와 같은 견해 중 급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입장을 표명하며, 윤회를 중시하는 기무라 다이켄 등에 덤벼
                든다.”(「와츠지 데츠로의 원시불교론」, 『近代日本と佛敎―近代日本の思

                想·再考 II』)



             단지 초기불교의, 윤회를 포함한 전통설을 ‘중시’하고 있는 것은 아카누
           마 치젠으로, 기무라가 아니다. 기무라는 아카누마를 전통 묵수주의자로

           서 비판조차 하고 있다. 스에키는 미야시타 세이키의 논문이 발표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최근 저서에서 제1차 논쟁을 다음과 같이 개관하고 있다.



             “기무라는 더욱이 전통적인 교학의 입장을 유지하고, 거기에서 보다

           근대적인 입장을 세우려고 하는 우이 하쿠주·와츠지 데츠로 등과 연기
           설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야마오리 2007). 기무라는 소위 삼세

           양중의 인연의 입장에 서서 12연기는 과거세·현재세·미래세의 3세에
           걸친 인과관계를 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무명을 맹목적인 의지라고
           보는 듯한 심리적인 해석을 하였다. 그것에 대하여 우이와 와츠지는, 12

           연기는 시간적인 3세의 관계를 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가 생겨나는 논리

           적인 인과관계를 설한 것이라 해석하고, 또 무명에 관해서는 지적知的인
           무지라고 해석하여 기무라를 비판했다.”(『思想としての近代佛敎』 IV, 「불교연구

           방법론과 연구사」 3절 「불교학의 전개」, 中公選書)



             야마오리설에 의거한 이 총괄은 잘못이다. 『원시불교사상론』을 정독
           하면 바로 알 수 있듯이 기무라는 12지연기에 대하여, 이것은 반드시 시

           간적 인과의 고찰이 아니라 몰沒시간적 의존관계로서 설하고 있는 경우



           112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