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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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다. 설령 당시 성실학파와 삼론학파가 판연히 구별되지 않았다 해도,
구마라집 문하 사성이나 팔준 어디에도 승숭僧嵩의 이름이 보이지 않고,
거꾸로 이 사카이노境野 학설學說 어디에도 사성 내지 팔준의 이름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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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상의 세 가지 설에 각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간결하게 지적하고, 부
족한 자료에 의거하여 원류를 추구하기 때문에, 추구하는 태도 방법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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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가능한 한 구비되지 않은 것을 보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승랑의 등장과 관하구설關河舊說의 연관
첫 번째 남도설南都說과 두 번째 마에다前田 학설學說에서 삼론학파 계
보에 승랑僧朗이 아닌 도랑道朗이 거론된 배경에 관하구설關河舊說이 연관
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길장은 자신의 저술 곳곳에서 삼론의 학문적
계승의 연원을 관하구설關河舊說이라 칭하였는데, 그 기본적 의미는 북지
장안의 구마라집과 그 문하의 삼론학을 의미하였다. 다소의 세월이 지난
뒤, 승랑이 북지에서 삼론학을 수학하고 남지로 건너와 섭산攝山에 거주
하며 승전僧詮에게 전수하였고, 이후 길장에게 계승되었다. 길장은 이렇게
섭산의 승랑으로부터 계승되어 섭령상승攝嶺相承의 시조가 된 섭산대사攝
山大師를 낭공朗公·랑법사朗法師·대랑법사大朗法師 등으로 호칭하였다.
그런데 8세기 일본 최고의 삼론학자 남도南都 대안사大安寺의 안징(安澄,
6) 平井俊榮, 『中國般若思想史硏究』, 1976, p.61.
7) 結城令聞, 「三論源流考」, 『印度學佛敎學硏究』 1-2, 195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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