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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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814)이 저술한 『중관론소기中觀論疏記』에서 길장이 칭한 섭산대사 낭
공朗公을 줄곧 도랑師道朗師라고 말하였다. 또 관하關河는 관중關中과 하서
河西의 양자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하河는 하서河西를 뜻하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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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도량이라고 간주하였다. 이것이 계보설 중에 남도설과 마에다前田
학설學說에서 하서의 도량이 삼론학파 조사의 하나로 헤아려진 근본적 이
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의 사카이노境野 학설學說에서 도랑을 승랑이라고 정정
한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어째서 안징安澄과 남도南都의 전승에서 도랑
과 승랑을 혼동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나 길장이 언급한
랑법사朗法師·낭공朗公은 본래 요동遼東의 인물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양고승전』에 의거하여 요동 출신으로 삼론을 명가名家로 하고, 남지에 와
서 법도의 제자가 된 승랑이라는 것이다.
도랑은 길장이 도처에서 하서河西의 도랑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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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 혼동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정정한 것이다. 바로 이 세
번째 계보설에 의하여 비로소 고구려 출신의 승랑僧朗이 삼론학파의 조사
가운데 한 명으로 등장한 것이다.
새로이 요청되는 삼론학파 계보설
세 가지 계보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고,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다는
8) 이것은 중국학자 탕용통湯用 彤의 지적에 따른 것이며(『漢魏兩晋南北朝佛敎史』 下冊, 臺北:漢聲出版社, 1938, p.740 ),
나중에 이에 대한 반론이 일본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9) 境野黃洋, 『支那佛敎史講話』 下卷, pp.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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