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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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보다도 순관이 중시되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경장의 편찬으로부터, 마침내 아비달마불교로의 진행에 보이
는 전통적인 합송合誦의 논리화로 규정될 수 있는 방식에 맞춰
져, 그 결과로서 왕관과 환관 중 논리화의 소산인 환관이 채택
되고, 그리고 동일하게 생관生觀이 놓이게 되었다.”(인용자주: 사
이구사가 말하는 ‘생관’은 본서에서의 ‘순관’이다. 三枝 前揭論文)
그런데 왕관과 환관은 어디가
왕관往觀과 환관還觀의 이동
다른 것일까? 12지연기를 성찰의
계시적繼時的인 과정으로 간주하고 동시에 그 시간이 내관內觀의 진행에
따르는 것으로 인정한다면, 왕관이야말로 원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경우 환관은 관찰의 결과, 사후事後에 얻어진 이론적인 연기설이라는 것
이 된다.
왕관과 환관은 시간의 계열적인 방향에서 역방향으로 보이지만, 원인
―결과, 조건―피조건의 논리적인 인과계열은 동일하다. 왕관에 있어서
예를 들면, “노사는 왜 있는가”, “집착은 어떻게 생기하는가”라는 문제가
먼저 있다 해도 어디까지나 답은 “생을 원인으로 노사가 있다”, “갈애의
생기를 원인으로 집착이 생기한다”는 것으로, 환관의 경우와 다르지 않
다. 인과의 방향성에 관하여 왕관과 환관은 바로 동일한 것이다. 물론 12
지계열을 붓다의 내성內省의 과정으로서 살펴보는 것으로는 왕관의 쪽이
자연적일 것이지만, 논리적인 귀결은 동일하다.
단지 반성적으로 정돈되어 기술된 무명에서 시작하여 노사로 끝나는
환관(역적 순서)에서는, 본래 붓다의 구도의 동기이며 동시에 불교의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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