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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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에서 동시에 피조건이 되고 있다고 혼합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

            각한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앞장에서 인용한 「원시불교자료론」(『印度哲學硏究 第二』 所

            收 岩波書店)의 9절에 보이는 설명인 “(이다파차야타의) 그 의미는 갑은 이 을
            에 의존하고, 을은 또 이 갑에 의존하는 곧 상호간에 상의하는 것이 되는

            까닭에 상의성으로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前揭書)라는 것과는 전혀 앞뒤
            가 맞지 않는다. 나아가 우이는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12지연기의 지분의) 하나하나는 결코 시간적으로 인과의 관계에

                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논리적이며 더욱이 상호간 상의
                적相依的인 것을 예상하고 있는 관계에서 열거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것인가 하나가 불변적인 중심실체인 것
                이 아니라 갑은 을에 의존하고 을은 갑을 도우며 서로 상의하

                여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숫자상으로는 통례 열둘이
                지만, 실제적으로는 모든 것은 이 중에 포함되고 나머지는 없

                는 까닭에, 일체의 것의 관계는 결코 각자 독존고립이 아니라
                상의상자相依相資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이 의미를 연기라

                고 하고, 이 설을 연기설이라 칭한다.”(「원시불교자료론」 前揭)



              어느 쪽이 우이가 생각하는 진짜의 것인지 이 인용개소를 보는 것만으
            로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단순히 12지연기를 동시생기로, 또 동시에 쌍

            방향의 관계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은 알 수 있다. 단지 동시에 우
            이가 12지연기의 관계를 비시간적인 조건―피조건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

            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이, “12지연기의 하나하나는 결코 원인결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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