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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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를 공동의 상대로 하면서 와츠지와 우이를 같은 진영에 놓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예를 들면 스에키 후미히코末木文美士는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기무라는 비교적 전통적인 해석을 중시하고, 연기의 시간적
인과성을 강조한 것에 대하여, 우이는 그것을 비판하여 연기
를 일관하여 논리적 상의관계로서 해석하려고 하였다. 와츠지
는 우이설에 편을 들어 엄격한 기무라 비판을 전개했다. 기무
라의 급서라는 우연한 사정도 있어, 그 후 일본의 원시불교 해
석은 우이설을 전개시키는 방향으로 전개했다. 와츠지의 설은
우이설을 보다 더 가다듬는 형태로 영향력을 가졌다.”(「와츠지
테츠로의 원시불교론」 『近代日本と佛敎-近代日本の思想·再考 II』, トラン
スビュー)
와츠지가 우이설을 어느 것을 ‘가다듬었’다고 하는 것일까. 만약 우이
의 ‘논리적 상의관계’의 연기설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앞서 본 와츠지의
우이 비판을 보면 분명하듯이, 그것은 있을 수 없다. 또 전장에서도 확인
했듯이, 적어도 「사실적 세계관」의 기무라는 ‘연기의 시간적 인과성’에 오
히려 부정적이다.
이러한 구도설정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무라의 「연기관의 전
개」에 있어서의 정리에 다다른다. 야마오리 테츠오는 “와츠지의 연구는
우이의 ‘논리주의적 해석’을 이어받아, 그 논리주의적 해석을 한층 논리화
하고 인식론화하여 소위 칸트의 범주론에 가까운 곳까지 나아간 것”이라
고 기무라의 정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말라빠진 불타」, 『近代日本人の宗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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