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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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손에 넣는’ 것은 자연적인 행위이고, 물론 ‘자기를 사랑하는’ 것도 자

            연적인 의향이다. 불교는 그 자연성을 즉 실감적實感的 자명성自明性을 비
            판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고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불교를 반직각적反直

            覺的 ‘counterintuitive’ 또는 반실각적인 것이라 하는 것은 이상의 이유에
            의한다. 반복하지만, 유쾌한 것을 기분 좋게 느끼고, 귀여운 것을 사랑하

            며, 추악한 것을 혐오하며, 불안과 고통을 멀리 하려고 하는, 없애기 어
            려운 직각과 실감이야말로 근본적인 번뇌이고, 우리들을 미혹의 생에 묶

            어 놓는 집착의 근원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 입장은 허망에 지나지 않
            는다. 그것이 허망인 것을 모르는 것이 곧 무명인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

            기본에 대하여, 와츠지는 아비달마불교의 개념을 사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래 부지不知가 부지로서 알려지는 것은 행에 의해 성립하는

                유위의 세계에 대하여 무위를 인식하는 보다 높은 입장, 달리
                말하면 ‘법에 근거하여 존재하는 세계’를 벗어나 그 법 자신을

                관하는 ‘명’ 혹은 ‘반야’의 입장에 서는 까닭이다.”(前揭書)



              이것은 자기를 포함하는 전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법을 관하는 메타레
            벨에 선다는 의미이다. 전현상은 법이라는 형식에 의해 한정됨과 동시에,

            존재기제로서의 법 그 자체에 의해 존재한다. “존재자는 요별了別되어짐
            에 의해 비로소 존재자로서 존재한다. 즉 요별이라는 형식에 의해 존재자

            가 성립한다.”(「제1편제1장 무아의 입장」 『佛敎倫理思想史』 『和辻哲郞全集 第19卷』 所
            收, 岩波書店)

              더욱이 그 존재기제로서 법의 영역과 속성을 한정하는 법이 있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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