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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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하지 않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도 개개로 구

                별되어 있는 것은 식의 자기한정으로 간주된다.”(「제1편 제1장」
                『和辻哲郞全集 第19卷』所收, 岩波書店)



              사상일반의 요별(구별), 한정이 오로지 식의 작용으로 보는 것은 옳다.

            예를 들면 색이란 자연과학의 용어로 말하면, 전자파 속에서 인간의 안근
            이 파악할 수 있는 가시광선을 분별한 명칭이다. 가시광선은 ‘자주색’으로

            감수되는 파장이 짧은 것으로부터 ‘빨강’으로 감수되는 파장이 긴 것까지
            연속적인 색의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진다. 이 연속체를 말[명名]로서 임의

            로 구별한 것이 ‘녹색’이라든가 ‘짙은 푸른색’, ‘우유빛색’이라고 하는 우리
            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색이다. 색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코발트 블

            루’, ‘프러시안 블루’나 ‘남색’ 등에 자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것과의
            차이에 있어 가설된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자연과학적, 색채광학적인 인식도 또 분별의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실제로는 예를 들면 ‘피부색’이나 ‘신호기의 청색’과 같은 명칭

            과 지시대상의 관계가 안정되지 않은 애매한 색이 순간적인 객관성의 허
            구를 폭로해 버린다. 그와 같이 무수한 방식에 의한 분별이 있어 결정할

            수 없다는 사태 그 자체가 색의 비실체성을 말하고 있다.
              행 즉 갖가지 형성작용은 무명=무지를 연으로 분절된다. 세속은, 범부

            가 아닌 부처가 메타레벨에 오르게 됨으로서 비로소 하위의 레벨로서 대
            상화된다. 자연적 입장을 세속의 영역에 한정된 진실(세속제)의 입장이라

            고 달관할 수 있는 것은 지혜가 ‘명’, ‘반야’라고 하는 메타레벨에 도달했
            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한정된 영역은 그것이 한정된 것으로 인식되어

            졌을 때 소멸한다. ‘무엇에 의해 무명이 있는가’라고 묻기 위해서는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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