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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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2. 전승 문헌의 기록과 국내의 평가



             승랑의 생애를 전하는 문헌 중에 세 가지 기록을 요약하여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① 혜교慧皎 『고승전高僧傳』 「석법도전釋法度傳」
             “법도法度는…제齊 영원永元2년 산중에서 졸卒하였으며 춘추春秋 64세

           였다. 법도에게 제자 승랑僧朗이 있는데 선사先師의 뒤를 이어 다시 산사
           山寺를 통솔하였다. 승랑은 본래 요동인遼東人으로 그 성품이 광학廣學하

           고 사고력이 해박하여, 무릇 모든 경론經論을 능히 강설하였으나, 화엄華
           嚴과 삼론三論에 가장 뛰어난 명가命家였다. 이제 (梁武帝) 황상께서 그 그

           릇이 중대함을 깊이 통찰하고, 여러 의사義士에게 칙하여 (승랑이 거주하는)
                                    6)
           산에서 수업受業하게 하였다.”
             ② 길장吉藏 『대승현론 大乘玄論』제1권
             “섭산攝山의 고려 낭대사朗大師는 본래 요동성遼東城 사람이다. 북토에

           서 멀리 라집법사羅什法師의 의義를 습득하고, 남토에 들어와서 종산鍾山
           초당사草堂寺에 거주하며 은사 주옹을 만났으며, 주옹은 그로 인하여 대

           사大師에게 수학하였다. 다음에 양무제梁武帝는 삼보를 경신敬信하여 대사
           가 온 것을 듣고 승정僧正 지적智寂 등 10명을 보내어 산에서 수학하게 하






           6)  慧皎撰, 『高僧傳』 제8권, 「釋法度傳」, T50, p.380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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