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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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 답이 되어야할 무상의 원인이 되는 사항도 또 무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후나하시는 이 점에 대해 둔감하지 않다. 예를 들면 『원시불교사상의
연구』에서 “석존의 설법은 논리의 해설이 아니었다.”라고 명언하고 나아
가 “‘연기인 까닭에 무상이다’라는 것은 오직 하나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
다.”(前揭書)라고도 말한다.
“종교는 무상과 직접 대결하는 곳에서 생겨난다. 적나라하게
‘무상’이라는 현실 속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무상을 앞에
두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상을 해석
하는 입장이다.”
“무상을 체득하는 입장은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바 없이 무
상을 무상인 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행무상이라는 것은 논리적 추구에 의해 도달
된 결론이 아니라 말하자면 종교적 예지의 직관에 의해 도달된
것이다.”(舟橋 前揭書)
이것은 말 그대로이다. 무상이란 언어와 논리의 대상이 아니라, 직관
되어야할 것으로 절대적인 사실로서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 번뇌로 인해 집착하여, 자기를 포함한 무상한 일체의 사
물을 마치 무상하지 않은 것처럼 착각한다. 근본번뇌인 근원적 생존욕은
본능에 뿌리를 두지만, 사물을 무상하지 않은 실체라고 세뇌시키는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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