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P. 135
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般若心經は間違い?』 寶島SUGOI
문고).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장의 무상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다시 살피
도록 한다.
추론의 경우와 동일하게 언표의 영역, 의미의 영역의 밖에 있는 것, 붓
다가 말하는 ‘사고의 영역을 초월한’ 것에 관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근접할 수 있고, 암시할 수 있다. 현재 야마구치 즈이호
는 타자가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추구하고 있다.
더욱이 심신의 수습을 쌓는 것으로, 통상의, 자연적인 ‘지각과 추리’로
서는 통달할 수 없는, 즉 ‘사고의 영역’에는 없는 사상의 실상을 상당히
알 수 있게 된다.
후나하시의 ‘2종 연기설’
그러나 후나하시는 어찌하여 무리하면서까지 무상의 근거를 연기에서
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첫 번째로는 불교의 종교성을 어떻게 담보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
었다고 생각된다. 후나하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상’을 논리의 도마 위에 올려 어떻게 요리를 하더라도, 거
기에서 종교는 생겨나지 않는다.” “‘무상’을 논리적으로 설명·
해석해 보아도, 무상을 초월하는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 도리
어 무상에 철저해지는 것으로부터 무상을 초월하는 길은 열려
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석존은 무상의 논리적 근거를 제
시하지 않았지만, 초기불교의 교의상에서 그것을 추구해 가
면, 그것은 연기의 사상이다.”(舟橋<3>[상])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