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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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연기인 까닭에 무상’이 요청된다고 한다. 전반의 “어떻게 하여

           무상으로부터 종교가 생겨나는가?”, 환언하면 “무상에 있어서 불교의 종
           교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앞서 본 『원시불교의 사상』의 일절

           과 서로 통하며,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연기→무상’이라는
           인과관계의 인정이 그 답일 수 있는가. 이 비약은 채워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일체법이 연기하고 있다.”라는 일반적 보편적인 연기설을
           교리상에서 기초를 세우기 위해 무상의 근거로서 연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가능성이다.
             반대의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인 해석의 12지연기설에 의해서는 그것

           이 오로지 시간적인 인과관계라 해도, 무상의 기제機制를 실시간에 따른
           형태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12지연기의 전통설인 환관―순

           관은, 곧 무명으로부터 노사에 이르는 흐름이며, 동시에 번뇌와 행위와
           고의 생기의 과정을 나타낸다. 그러나 제1장에서 본 ‘찰나연기’와 ‘연박

           연기連縛緣起’의 설을 채용하지 않는 한, 번뇌와 행위와 고의 계기는 ‘지금
           여기’에서 무상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사태는 아니다. 12지의 연접은 실

           시간의 무상의 양상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왕관과 역관의 도정에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무상을 하

           나의 교설로서 취급하더라도 실제로는 12지연기설과의 관련성은 적다.
           여기에 12지연기를 반성적으로 파악한 논리적 인과관계로 간주하는 근거

           가 있다.
             후나하시에게 있어 ‘일체법’이란, 먼저 6근(안·이·비·설·신·의), 6경

           (색·성·향·미·촉·법) 등 유정의 생존을 구성하고 있는 내외의 전요소를
           가리킨다. 이것들 전 생존요소가 연기에 의해 존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나하시는 이것을 ‘일체법인연생의 연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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