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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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연기’는 극히 그 영향이 약한 것으로, 도저히 그대로는 용인할 수 없

           다.”고 단언한 위에, 다음과 같은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래서 나는 ‘일체법인연생’과 ‘유정수연기’는, ‘연기설’이 갖
                는 두 개의 면이며, 두 개의 의미로, 초기불교에 있어서 ‘연기

                설’이라고 하면, 소위 12연기설 및 그것에 준하는 연기설만이
                지만, 이 연기설이 나타내는 의미는 일단 이와 같이 두 개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일체법인연생의
                연기’를 둘러싸고」 前揭)



             이 양면성은 우이 하쿠주에 의해서도 설시되는 것으로, 후나하시는 우

           이의 『인도철학연구 제2』로부터 “12지에 대하여 모두가 상의상관相依相關
           이라고 하면, 세계 자체는 모두 상의상관의 관계에 있어서 성립하고 있다

           는 것과 동일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의 일절을 인용하고 있
           다. 이것은 제2장에서 인용한 마츠모토 시로松本史朗 등에 의해 초기불교

           의 연기설일 수 없는, 중국 화엄철학의 연기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된
           곳이다.



             후나하시 논의의 흔들림

             그러면 후나하시는 ‘일체법인연생의 연기’를 ‘상의상관’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우이의 설을 비판하여 말한다.



                “우이 박사는 근본불교의 연기설을 해석하는데 상의상관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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