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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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중국의 세 가지 고승전高僧傳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과도 다른 체

           재이다. 『삼국유사』가 고려 후기의 전적에 인용된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

           고 있다.그러나 조선 초기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 문헌에서는 이 책이 인
           용되는 예가 확인된다. 조선 초기 이후 이 책이 두루 유포되어 참고되었
                         1)
           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 전체 5권 가운데 특히 제3권과 4권은 불교사 측면에서 정
           사正史의 성격을 엿볼 수 있으며, 승려로서 일연 스님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불교는 삼국을 연결하는 고리



             삼국 당시 불교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문화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중요
           한 가교일 뿐만 아니라 각국의 대조적인 역사로 인해 문화적 친근성보다

           는 이질성이 두드러진 삼국을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였다.
             불교는 특히 왕실에 의해서 환영받았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

           에는 각 나라에서는 무당들이 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쳤고, 귀족세력과 연
           합하여 왕권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신라에는 소도가

           있고, 고구려에서도 주술가가 나라의 큰일을 점쳤다. 하지만 갈수록 복잡
           해지는 정세 속에 국가 간 전쟁은 치열해지고 왕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지

           않으면 그 나라는 존립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리하여 왕을 중심으로 한
           통치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기존의 토속신앙을 뛰어넘는 고등종교가 필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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