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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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우선 두어 사람이 그 동네에 가서 배고픈 사람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를 하고 명단을 만든 후, 또 다른 몇 사람이 그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쌀
집에서 쌀을 사고 쌀표를 만들게. 쌀을 지고 다니면 소문만 금방 나 버리
니, 한 말이든 두 말이든 표시한 쌀표를 가져가면 바로 쌀을 주도록 준비
해 두지. 또 다른 사람이 명단을 가져가서 그 쌀표를 나누어주면, 사람이
자꾸 바뀌니 어떤 사람이 쌀을 나누어주는지 모르게 되지. 또 누가 물어
도 ‘우리는 심부름하는 사람이다’고만 답변하는 거야.”
처음에는 쌀표를 주며 쌀집에 가보라 하니 잘 믿지 않더니, 쌀집이 별
로 멀지 않으니 한번 가보기나 하라고 자꾸 권했더니, 가서 쌀을 받아오
더라는 겁니다.
그 후 어린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하는 말이 “요새 우리 동네에 이상한
일이 생겼어. 어디서 온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그 사람들이 쌀표를
주어서 곤란을 면했어.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그 사람들은 하늘에
서 내려왔겠지?” 하더랍니다.
또 마산의 어느 신도가 추석이 되어 쌀을 트럭에 싣고 나가 가난한 사
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숨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신문에서 그걸 알고 그
사람을 찾아내어 대서특필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내게 왔기에 “신문에
낼 자료 장만했지? 다시는 오지 말게.” 했더니 아무리 숨어도 신문에 발
목이 잡혔다고 해명했습니다.
“글쎄, 아무리 기자가 와서 캐물어도 발목 잡히지 않게 불공해야지. 불
공은 남모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부자 노인이 불공을 잘하므
로 이웃 청년이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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