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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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종단 역시 새로운 사회적 흐름에 맞추어 종단의 제도나 의례 등을
개선하는 것이 절대 필요함을 직감하였다. 이렇게 개별 종단의 개혁이 요
구되는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메이지 초기의 불교
억압을 회생의 길로 인도한 대표적인 인물이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시마지
모쿠라이島地黙雷이다.
선각자들의 출현
시마지는 메이지유신의 또 다른 축인 죠수長州 지역의 정토진종 본원
사파 소속의 스님으로 일찍이 종단 개혁에 몸담아 종문宗門을 일신시키
고, 후일 불교계의 여러 종단이 합동으로 메이지정부의 종교정책에 대항
하는데 크게 활약하였다. 그는 종문의 개혁과 함께 종문의 동료들과 서
양의 견문에도 일찍 눈을 돌려 불교가 국제화와 세계화에 눈을 뜨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서양의 시찰 중에 국가와 종교의 역할에 대해 상당
히 연구를 기울여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것은 후일 신도는 종교가 아니라는 신도비종교론으로 국가신도가 형성
하는 원인遠因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시마지가 활약하던 당시 그가 주장
한 정교분리론은 불교가 사회적 위상을 되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또한 실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한 종교담당기관인 교부성敎部省이
설립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시마지를 비롯한 열성적인 불교인들
에 의해 불교도 차츰 회생의 기미를 보이게 되며, 이러한 회생이 새로운
부흥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 도쿄대학의 불교강좌 개설이지만,
이 불교강좌 개설에 이르기 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메이지 초기의 신불분리령의 종교정책을 담당한 사람들은 주로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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