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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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동양 학자들의 민족주의와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하은주 삼대가 전설에 불과하다는 서양학자들
의 주장에 반하여 동양 학자들은 자신들이 유구한 역사와 깊은 철학을 지
닌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동양 사상은 철학적 깊이
가 없다는 서양학자들의 주장에 반하여 서양 철학과 동양 사상의 차이를
제기하며 반박하였다. 마찬가지로 중국 근대에서 불교의 부흥과 불교학
의 성립 역시 서양의 침탈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적 학문 활동이었다.
서양사상에 대항하는 세 가지 길
근대 시기 한·중·일 삼국에서는 서양의 충격에 대한 동양 전통 철학
의 반응이라는 동일한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었겠지만, 중국에서는 특히
불교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다음 세 가지 반응을 나타내게 되었다.
첫째는 유식불교의 등장이다. 중국 근대에서는 특히 유식불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게 되었다. 체계적이고 정밀하며 분석적인 유식불
교는 서양의 칸트Kant나 헤겔Hegel 사상에 못지 않은 관념론 사상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양의 관념론 철학이
중국에 소개되고 중국 전통사상은 인식론이나 논리적인 부분이 약하다고
비판받는 상황에서, 서양의 관념론 못지 않은 인식론과 논리로 무장한 이
동양의 관념론은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유식불교는 그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성격 때문에 칸트나 헤겔 같은 서양 관념론을 대치할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여겨졌고, 유식불교에 대한 관심은 바로 그것이 서양과 중
국 전통사상의 계합적 역할을 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유식불교의 부활
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유식불교의 이성적, 사변적인 논리 정신을 근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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