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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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사실 불등수순 스님은 화두 하나만 갖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
었습니다.
하루는 불감혜근 스님이 그를 불렀습니다. 불등수순 스님은 겁은 났지
만 부르는데 안 갈 수가 없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스님 앞에 앉았습니
다. 그러자 불감혜근 스님이 무슨 법문을 해주시는데, 그 법문을 듣는 순
간 불등수순 스님은 그만 확철히 깨쳤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정진을 시작해 도를 성취하기까지의 기간을 헤아려 보니 사십
구일 동안이었습니다. 사십구일 동안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입는 것, 자
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서서 공부만 했던 것입니다. 불등수순 스님은 실
제로 용맹정진을 했고, 그리하여 깨쳐서 인가를 받은 것입니다.
불감혜근 스님의 사형되는 분에 원오극근 선사가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듣고는 찾아왔습니다. “그까짓 며칠 동안 공부한 것 가지고 뭘 안다고 인
가를 해줘. 사람을 죽여도 푼수가 있지. 내가 봐야겠으니 그놈 오라고 해.”
이렇게 불등수순 스님을 불러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산모퉁이를 도니
절벽이 나오는데, 절벽 밑에는 폭포가 있고 폭포 밑에는 깊은 소沼가 있었
습니다. 그 옆을 지나가는데 원오 스님이 그를 절벽 밑의 폭포 속으로 확
밀어 넣더니 공부한 것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물길이 깊어 발이 땅에 닿지도 않고, 입으로 코로 마구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데다가 폭포소리가 요란하여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렇게 정신을 잃게 해 놓고는 법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등수순
스님은 마치 방안에 앉아 대답하듯 묻는 말에 척척 대답을 했습니다. 이
것을 본 원오 스님은 “그놈 죽이기는 아깝구나. 끄집어 내줘라.”고 말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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