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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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계하였다. 이때 어린 조카를 1
년 만에 축출하고 세종 둘째아들 수
양 대군이 왕 자리를 빼앗아 세조가
되었다. 이때 김종서, 황보인, 조극관
조수량 형제, 이양 등 국가 동량들을
살육하고 혈육인 안평 대군도 죽였
사진 6. 두꺼비 연적.
다. 반면 왕위찬탈에 같이 행동한 정
인지, 한확, 한명회, 이사철, 이계전, 권람, 최항 등 37명은 정난공신靖難功
臣이 되어 공신전功臣田을 두둑이 받고 거대한 기득권세력을 형성하였다.
조선 창건 이후 나라 땅을 이렇게 나누어가진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조선의 역사는 지극히 왜곡되고 파행을 거듭한다. 1456년 세조의
잘못을 탄핵하고 단종을 다시 세워 왕조의 정통성을 바로 잡으려 하다가
세상을 떠난 충신을 역사에서 사육신死六臣이라 한다. 이때 정의를 위해 일
어선 70여 명이 모반혐의를 뒤집어쓰고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비극이 벌어
졌다. 세조의 불의에 저항하여 관직을 던지고 초야에 묻힌 인재들을 역사
는 생육신生六臣이라고 기록한다. 세조는 아버지 세종이 키운 국가동량지
재國家棟梁之材들을 이렇게 없애 버렸다. 그 이후에도 음모와 살육의 정치
는 계속 반복되었다. 아무튼 낙산사에는 세조가 하사한 것으로 전해오는
대형 벼루(사진 5)와 두꺼비 연적(사진 6)이 전해오는데, 이를 보는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낙산사에는 의상기념관을 신축하여 의상 대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
하여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어 과거에 비하여 더 진지한 모
습을 볼 수 있다. 의상 대사와 원효 대사에 관하여 얘기하자면, 청사晴師
안광석安光碩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은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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