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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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법계인유 실물. 사진 8. 무량겁 인영.
생에게서 서예와 전각을 배우고 범어사 동산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 수계
한 후 나중에 환속하였지만, 평생 의상 대사와 원효 대사를 스승으로 받
들면서 두 분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리고는 갑골학,
서예, 전각, 서각, 다도에서 큰 길을 열어 가는 일대 선생으로 활동하셨는
데, 의상 대사에 관하여는 일본의 자료까지 모아 「화엄연기華嚴緣起」라는
제하의 작품을 남기셨고, ‘화엄일승법계도’를 쓰고 전각과 서각으로 새겨
전무후무한 「법계인유法界印留」(사진 7, 사진 8)의 작품을 남기셨다. 위비魏
碑의 높은 풍격을 지닌 선생의 글씨는 보는 이의 정신을 고양시켜준다. 나
는 젊은 날 화엄학을 배우고자 선생의 ‘우린각羽麟閣’을 출입하며 자상한
아낌 속에서 서예와 전각 등에 대해서도 눈을 키울 수 있었다.
법인法仁 화상은 감회에 젖어 있는 나에게 ‘공중사리탑空中舍利塔’의 비
석 글을 보여주며, 얼마나 격이 높은 글이냐고 하셨다. 글은 당시 강원도
방어사 겸 춘천도호부사로 있은 이현석(李玄錫, 1647-1703) 선생이 1693년에
지은 글이었다. 그는 방대한 「유재선생집游齋先生集」을 남겼는데, 이수광(李
晬光, 1563-1627) 선생이 그의 증조부다. 낙산사의 관음굴에는 영험한 일이
자주 있어 굴 앞에 법당을 짓고 관음상을 모셨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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