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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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측면과 생멸이라는 한시적이고 더러운 측면이 있을 수 있음을 동시
에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점에 『대승기신론』의 철학적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오염된 현상계가 바로 진여의 표현 그
자체라는 진여연기론의 전형적인 사고 방식이다. 실체를 진여의 측면에서
파악하면 현상계의 모든 법은 진여의 표현이 되고, 실
체를 생멸의 측면에서 파악하면 현상계의 모든 법은
생멸인연의 무상한 존재가 된다. 바로 이 두 문이 분
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은 본체와 현상이 분리되
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고, 유학이 인도 전래의 불교
사상에 작용하여 새로운 불교를 창출하는 순간인 것
이다.
그러나 이 두 문의 성격이 이처럼 판이한데 어떻게
서로 분리되지 않고 일심이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
해 『대승기신론』은 “더럽고 깨끗한 모든 법은 그 본
성이 둘이 아니어서 더러움과 깨끗함의 두 문이 다 사진 4. 『신유신론』, 김제란 옮김,
2007년, 소명출판.
르지 않으므로, 하나라고 부른다.”고 대답한다. 그리
하여 “이 진여의 체는 버릴 것이 없으니, 일체법이 모두 참되기 때문이다. 또
한 주장할 것도 없으니, 일체법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현상계
의 모든 대상들이 본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두 참되고 동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 마음에 두 개의 문이 열려있다는 의미의 ‘일심개이문一心
開二門’은 바로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라는 두 상이한 영역을 일심, 즉 한마
음이라고 하는 진여의 영역에서 통일함으로써, 현상계의 가치를 최대로 인정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진여의 진정한 핵심의 체현이
며, 이 진여는 모든 것에 퍼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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