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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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한 아라야식의 현행으로 현상 세계를 설명하기 때문에, 당연히 본체인
진여와 현상 세계는 동일한 성격으로 나타날 수가 없다. 따라서 본체와 현상
을 분리하게 되고, 웅십력이 유식 불교를 비판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성지性智’와 ‘양지量智’
웅십력은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성지性智’와 ‘양지量智’, 또는 ‘본심本
心’과 ‘습심習心’을 구분하였다. 양지는 일종의 대상화, 물화物化된 사고 방식
이다. 본체는 외부 대상을 향하는 객관화된 이해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반
성을 통한 내적 체험[반관자조反觀自照], 즉 본성의 지식인 성지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외부를 향해서 사물을 구하며, 외부
사물이 나 자신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또 외부 사물
에 대한 관찰·분석·추론·예언·증명 등의 방식을 통해 객관 세계를 인식한
다. 이러한 인식 방법이 과학적 방법이며, 웅십력은 이를 양지라고 불렀다.
이러한 방법은 일상적인 행동에는 유효하고, 오래 계속되면 자연히 습관이
되어 이러한 습관으로 모든 문제를 대하고 처리하게 된다. 그러므로 웅십력은
양지를 습관적인 마음, 즉 ‘습심’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성지가 진정한 자신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본체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본체를 인식한다는 것은 하나
의 마음이 따로이 본심을 인식한다는 것이 아니고, 본심이 자기 스스로를 인
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체의 인식 방법인 성지를 진정한 자신(본체)의 ‘깨
달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과 웅십력 철학의 ‘체용
불이’로 요약하는 두 사상 사이의 본체론의 유사성이 현대신유학, 또는 현대
신불교가 등장하게 되는 필연적인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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