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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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의 보임保任이다. 은, 부처님과 조사들도 엿보아 알
수 없는 올바른 눈을 가진 수행자
의 헤아릴 수 없는, 깨달음 이후의
보임이다.
【강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함은 6추의 거친 망상뿐 아니라 3세의
미세한 망상까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10지와 등각도 일념불생一
念不生이 아니다. 왜냐하면 제8 아뢰야식의 미세무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0지·등각을 초월해 정각을 성취하고 나서야 비로소 본지本地,
즉 자성의 본래면목을 확연히 보게 된다. 천하 노화상들의 법문은 구경각
을 성취한 뒤 대적삼매大寂三昧에 들어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대적삼매를
성취하지 못한 자들은 그 법문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 없다. 소리야 듣겠
지만 그 정확한 뜻은 알 길이 없으니 제각기 알음알이로 사량해 곡해하기
일쑤다.
그러나 구경각을 성취하고 똑같은 대적삼매에 들어 그 법문을 듣는다면
의심하려야 의심할 수가 없다. 맑은 하늘 빛나는 태양처럼 너무도 분명하
다. 그런 사람은 시방법계는 물론 부처와 조사도 앉은 자리에서 몽땅 끊어
버릴 수 있다. 그런 경계를 성취한 뒤 자유자재하게 생활하며 성태, 즉 바
르게 깨친 그 자리를 길이 보존하는 것이다. 길이 보존한다는 것도 무심無
心과 무사無事로 기르는 것이지 보호하고 지킬 무엇이 있어 애를 쓰고 노
력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대해탈인의 오후보임 경계는 불견佛見, 법견法
見도 넘볼 수 없는 신묘한 경계이다. 이런 신묘한 경계를 두고 뒤범벅이 된
번뇌 망상의 정식情識으로 이러니저러니 억측하고 사량한다면 이는 봉사
가 그림을 평하는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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