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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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떠 올려보면 그 치열한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권력을 쥔 자들끼리
하루가 멀다 하고 큰 전쟁과 작은 싸움들을 하고, 승자는 패자를 짐승 같
이 다루며 사람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세상이 온존한 인
간세상일리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언제 무슨 영문으로 죽을지도 모른 채 하
루하루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공통된 염원이 영생불사永生不死였
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영생불
사를 꿈꾸며 사는데, 이 당시에도 이를 노려 온갖 허황된 얘기들과 주술
들이 난무하고 혹세무민하는 언설들이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었
다. 하기야 종교치고 영생불사를 내세우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만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영생불사가 안되면 사후 부활을 내세우든가, 아니면 생물학
적으로는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있어 불사한다고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형
이상학적인 나의 ‘존재’를 설정하여 몸은 없어지지만 그 존재는 영원이 사
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형편에서 만 백성이 진리에 눈을 뜨고 평등하
고 행복하게 사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고자 뛰어난 불교철인들과 지식
인들이 진리 탐구의 길에 뛰어들었다.
신라에 불교가 언제 처음 전해졌는가 하는 점에 관하여는 신뢰할 수 있
는 기록이 없어 여러 견해들이 분분한 형편이다. 제13대 미추왕(味鄒王, 262-
284) 2년인 263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 화상이 전했다는 견해, 19대 눌
지왕(訥祗王, 417-458) 때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신라 땅으로 와서 지
금의 선산인 일선군一善郡에 살고 있는 유력가 모례毛禮의 집에 머물며 불교
를 전했다는 견해, 21대 소지왕(炤知王, 479-500) 때 아도 화상이 세 사람의
시자侍者와 함께 신라로 와서 모례毛禮의 집에 있다가 아도 화상은 먼저 가고
시자들은 남아서 불교를 전했다는 견해,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가 신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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