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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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왕 3)에 성국
공주成國公主가 병
이 들었는데 무당
이나 의술을 가진
자도 낮게 하지 못
하였는데, 아도 화
상이 대궐로 나아
가자 공주의 병이
사진 7. 모례정.
나았다. 이에 왕이
기뻐하며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아도 화상은 천경림天鏡林에 띠풀로 지붕
을 덮어 흥륜사를 창건한 뒤 그곳에서 설법하였다. 모록의 누이 사씨史
氏는 아도 화상에게 귀의하여 신라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그녀는 삼천
기三川岐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영흥사라고 하였다. 얼마 후 미추왕이 죽
자 사람들이 아도 화상을 헤치려 하여 그는 모록의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만들고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도본비」의 내용만을 놓고 보면, 아도는 아굴마와 고도령 사이에서 태
어난 고구려 승려로서 신라불교의 초전자라고 할 수 있지만, 「신라본기」와
「아도본비」에 등장하는 두 명의 아도는 서로 다른 사람임이 분명하고, 고
구려 불교의 재전자인 동진에서 온 아도 역시 신라불교의 초전자 아도와
는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눌지왕 때 신라에 온 묵호자墨胡子
역시 「신라본기」와 「아도본비」의 아도와 같은 인물로 확정할 수 없고, 나아
가 백제 불교의 초전자인 마라난타와 아도를 동일 인물로 볼 근거도 없다
고 한다. 결국 신라 미추왕 때 신라에 건너 온 아굴마와 고도령의 아들 아
도, 고구려 불교의 재전자 아도, 그리고 소지왕(=비처왕) 때의 아도는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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