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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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숙면일여는 고사하고 몽중일여도 되지 않았으니 그것을 무슨 공부라
하겠는가?”라고 지적하신 것이다. 혹 오기 부리는 사람이었다면 자기가 제
일인 줄 알고 “당신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허나 대혜 스님은 숙세에 선근을 많이 심은 분이라 귀에는 거슬리
지만 스스로 돌이켜보아 자신의 과오를 깊이 인정했던 것이다.
또 병중에 일여가 되지 않고서 스스로 공부를 마쳤다고 오인했던 사람
들도 많다. 그 대표적 예가 대혜 스님의 스승인 원오 스님이다. 원오 스님
도 스스로 크게 깨쳤다고 자부하고선 천하를 횡행했었다. 원오 스님은 대
혜 스님도 미치지 못할 대수재로 천하에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당대 인천의 안목으로 추앙받던 오조법연 선사를 찾아뵙게 되었다. 오조
스님은 첫눈에 그 잘못을 알아보고 틀렸다고 지적해주셨지만 원오 스님은
전혀 인정하질 않았다. 도리어 법연 스님을 바른 선지식이 아니라고 의심
하였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원오 스님에게
법연 스님이 마지막으로 “네가 큰 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되면 그때 내 말
이 다시 생각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다 원오 스님이 훗날 정말 병이 들
어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제방을 횡행하며 큰소리로 자신의 견처를 자
부했었는데 죽음을 앞두니 부처와 조사도 맘대로 죽이고 살리던 평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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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처所得處가 빙소와해氷消瓦解 되어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때 법연 선
사의 마지막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병석에서 죽지 않고 다행히 살
아난다면 모든 것을 청산하고 법연 스님을 찾아가리라.”고 서원을 세웠다.
다행히 병이 나은 원오는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법연을 찾아가 자신의 어리
석음과 과오를 참회했다. 그리고 오조 스님 회하에서 제대로 열심히 공부
해서 법연 선사의 법맥을 이었다.
진실하게 일러주어도 긍정치 않은 예는 비단 원오 스님에 그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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