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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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근대적 인간으로서 기요자와는 이를 간파했다.
유물, 유심론과도 관계없이 오직 실천적 영역인 정신주의는 추상적인 형
이상학을 논할 것도 없다. 객관적 사실, 사물에 좌우되지 않는 주관을 탐
구하여 그 가운데 절대무한자를 발견하고 자족하는 것이다. 마침내 그의 전
매특허인 내관주의內觀主義에 이른다. 즉, “일체의 사태를 주관적으로 처리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들 마음을 무한절대의 지위에 놓고 활동하는 것
이다. 일체의 활동으로써 나의 활동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체의 책임을 가
지고 자기의 책임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르러 도덕
을 지켜도 좋다. 지식을 구해도 좋다. 정치에 관계하는 것도 좋다. 장사를
해도 좋다. 수렵을 해도 좋다. 나라에 일이 있을 때는 총을 메고 전쟁에 나
가도 좋다.”라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이 내관주의는 결국 제자들에 의해
여러 버전으로 확산되어 제국의 전쟁에 협력하는 역설逆說을 낳게 된다.
정신주의의 한계인 셈이다. 기요자와는 공동체의 윤리를 따르는 속제俗
諦로부터 독립된 진제眞諦, 즉 불법의 자율적 세계를 확립하여 국가를 넘
어선 종교의 자유를 지향했다. 그러나 일본의 선종이 그렇듯 유심론이든
주관주의든 현실적 윤리와의 냉철한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폭력과
차별의 야만적 현실을 방관하게 되고, 자신과 이웃마저 그 지옥 속에 밀어
넣는 역사가 반복된다. 독일과 일본의 근대가 여실히 보여준다.
기요자와는 열반 전 마지막 글인 「나의 신념」에서 자신의 신념은 여래를
믿는 것이며, 그 특질을 세 가지로 든다. 첫째는 고를 해소시켜주는 능력
이며, 둘째는 이 믿음이 자신의 지혜의 궁극이고, 셋째는 여래는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능력의 근본 본체라는 것이다. 카시와하라 유센은 『일본불
교사 근대』에서 악인정기설惡人正機說을 설한 종조 신란(親鸞, 1173-1263)의
『탄이초歎異抄』를 통해 타력주의를,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타스의 어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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