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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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손님과 함께 저녁밥을 먹는데 젓가락을 손에 쥐고 먹는 것을 잊
          고 있었다. 이를 본 원오 스님이 웃으며 손님에게 “저놈은 황양목선黃楊木
          禪을 참구한다오.” 하고 핀잔을 주었다. 나무 중에 가장 더디 자라는 나무

          가 황양목이니 윤달이면 자라기는커녕 도리어 오그라든다는 얘기까지 있

          다. 스스로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는데 거기에 스승의 핀잔까지 들은 대
          혜는 분개하여 스승인 원오 스님께 따지듯 물었다. “예전에 스님께서도 노
          스님에게 유구무구 법문을 물은 일이 있다는데 노스님은 어떻게 말씀하셨

          습니까?” “‘유구무구가 칡덩굴이 나무를 의지한 것과 같을 때는 어떻습니

          까?’ 하고 물었더니 오조 스님께선 ‘표현하려 해도 표현할 수 없고 그림으로
          그리려 해도 그릴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또 ‘그럼 나무도 넘어지고 칡덩
          굴도 마를 때는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니 ‘서로 따르느니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대혜 스님이 확연히 깨달았다. 원오 스님은 그래도 혹 공

          안을 투과하지 못했을까 걱정이 되어 난해한 공안을 물었는데 대혜 스님은
          일체에 막힘이 없을 뿐 아니라 맞서서 거량까지 하였다. 이에 원오 스님이
          대혜 스님을 인정하였다. 그러니 완전한 오매일여가 되었더라도 다시 공안

          을 확철히 깨쳐야 병이 완전히 없어진 대조사라 할 수 있다. 조금 안 것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다가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깨치지 못하고 만다.
           대각을 얻게 한 인연을 어찌 육신을 낳아준 부모의 은혜에 비교하겠는
          가? 대혜 스님은 그 은혜를 잊지 못해 원오 스님 사후에도 좋은 음식이나

          새로 딴 과일이라도 있으면 먼저 원오 스님의 진영에 바쳤다고 한다.

           교가에서는 오매일여 숙면일여가 된 자재위에 들어가면 굳이 애쓰지 않
          아도 성불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많은 시일을 요할 뿐 아니라 10지 보
          살도 잘못하면 외도에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종문에서는 이를 인정치 않

          고 10지·등각마저 봉사나 잠을 덜 깬 이로 취급해 눈을 뜨고 잠을 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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