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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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수집이 필요하다고 건의했고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 도서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1912년에는 실록 등이 있는 사고 조사를 위해 오대산에 갔다가
수행에 전념하는 승려들을 보고 한국불교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1916년
에는 영남지역 고문헌을 조사하다가 의병장의 책상 위에 이황의 『퇴계집』
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유학 연구에 뜻을 품었다. 1919년에는 『조선의 교
화敎化와 교정敎政』이라는 논문으로 도쿄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명 문화통치시기였던 1920년대에는 총독부가 주관하는 관제 역사서
편찬사업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1922년에 조선사편찬사업위원회가 만들
어졌고 1938년까지 『조선사료총간』과 『조선사』 35권 등이 나왔다. 다카하시
는 이외에도 조선사학회에 참여하였고 『조선유학대관』을 집필하였다. 1921
년 총독부 시학관이 된 그는 유럽과 미국의 대학을 1년 정도 시찰하고
1923년 경성제대 창립위원회 간사가 되었다. 1926년 대학에서 소장할 한
적 구입을 위해 중국에 다녀온 후 경성제대 법문학부 교수가 되어 조선어
학문학 강좌를 맡았다. 그는 조선 문학사와 사상사 강의를 주로 하였는데.
그의 최고의 학문적 성과인 『이조불교』(사진 2, 1929)가 이 시기에 나왔다.
1939년에 정년퇴임 후 다음 해 6월에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교명을 바
꾼 혜화전문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하지만 1941년 4월에 그만두고 일
본으로 갔다가 1944년 다시 돌아와 경학원(옛 성균관) 제학 및 명륜연성소
장, 조선유도연합회 부회장을 맡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1950
년 덴리天理 대학 조선학과의 교수가 되었고 조선학회 창립을 주도하였다.
그는 명종대의 선교양종 재건 때 활동한 허응 보우의 문집 『허응당집』을
나고야 호사문고에서 발견하여 1959년 그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다
카하시는 1964년 퇴임 후 덴리대의 1호 명예교수가 되었고 1967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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