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9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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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에 관한 다카하시의 연구는
1912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월정사와 상
원사에서 정진하는 승려들의 모습을 보고,
“조선불교는 척불로 인해 사회적으로 종교
의 기능을 박탈당하고 산속에 유폐되어 형
기가 완전히 죽은 것 같지만, 이런 깊은 산
의 거찰에 오면 아직도 그 정신을 이으며 탈
속의 분위기가 충만하다.”고 감탄하며 한국
불교사 연구에 발을 들였다. 그가 쓴 한국
사진 1. 다카하시 도루.
불교 관련 첫 글(1912)에서는 “조선 왕실이
불교를 믿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잘못이며 조선의 불교는 종교의 입
장에서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하면서 연구 의지
를 불태웠다. 이때부터 그는 해인사 고려대장경, 종파의 변천, 사찰의 현황
과 특징, 종교사와 신앙, 승직과 승병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논문을 썼다.
1910년대 초반부터 총독부 촉탁으로 자료 조사와 수집에 힘쓰던 다카하
시는 그간의 어려움에 대해, “어느 고승의 사적을 찾아보기 위해 삼복더
위, 줄기차게 내리는 비와 눈을 무릅쓰고 말 등 위에서 10리 길을 왕복하
기 일쑤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고와 끊임없는 연구,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같은 선구적 업적에 힘입어 『이조불교』라는 역작이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자료를 활용하여 조선 초부터 왕대별 승정과 사건,
고승과 사상, 법맥과 문파, 사회경제, 문화 의례 등을 폭넓게 다루었다. 비
록 조선시대 불교만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여기서 시도한 계통별 분류와
방대한 자료 구사, 엄밀한 해석은 근대학문의 문헌 실증주의와 역사학의
방법론이 적용된 것이었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주제들과 문제의식, 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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