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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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 허응 보우에 이어 조선을 대표하는 고승인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와
이후 조선 후기의 계·문파별 법맥 계보와 활동을 상세히 정리하였다. 또
이이, 허균, 정약용, 김정희 등 이름난 유학자들의 불교관과 활발한 유불
교류의 양상도 주목되었다.
사상 및 수행의 측면에서는 휴정이 간화선을
궁극적 수행방안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선교겸
수를 내세웠음을 들어 조선시대에 미친 보조
지눌의 영향을 언급하였다. 이어 승려 교육과정
과 선·교·염불의 삼문 수행체계 등을 통해 다
양한 전통이 이어져갔음을 밝혔다. 또 이를 기
반으로 화엄을 비롯한 교학이 연구되고 불교 측
의 심성 논쟁이 벌어진 사실도 소개하였다. 그런
사진 2. 『이조불교』 영인본,
데 19세기 백파 긍선과 초의 의순에서 촉발된 2002, 민속원.
선 논쟁도 비중 있게 다루어졌지만, 그에 대한
평가만큼은 부정적이었다. 그는 “선에 대한 논의는 사상의 일관성이 없고
혼돈스럽고 불철저하여 조선 유파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이는 조선 학인의
공통 특성인 형식논리에 얽매인 편벽성에서 기인한다.”라고 폄하하였다.
이처럼 『이조불교』의 학문적 성취는 인정되어야 하지만, 그 안에 깔려있
는 타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부정 일변도의 도식으로부터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다카하시는 조선시대는 유교가 단독으로 사회를 지배하며 국
가 차원에서 금기시한 결과 불교는 사회성을 잃고 풍속과 미신 형태의 기
복신앙으로 존속하였다고 보았고, 이는 동양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
한 역사라고 평하였다. 식민주의자인 그의 관점에서 기이하고 왜곡된 타자
의 모습으로 조선의 역사상을 그려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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