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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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이후 연구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하지만 다카하시의 문제는 식민사관의 전형인 타율성과 정체성의 시각
에서 한국불교를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선시대를 억압과 쇠퇴로 인
해 발전이 정체된 시기로 규정하고 여성과 서민 신앙을 제외하고는 독자적
특성을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다시 말해 구체적 종교사로서 독특한
성격은 있지만, 크게 보면 조선조 500년 동안 불교가 국가로부터 교화의
권리를 완전히 빼앗기고 국가의 정책 방침에 좌우되어 종교의 본래 기능
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 한국불교는 중국불교의 한 분파에서 벗어나지 못
하며 불교나 유학이나 한국의 사상 또한 중국과 다른 독창성을 가지지 못
한다고 평하였다.
그는 『이조불교』의 「서설」에서 조선시대를 교법의 성쇠를 기준으로 세 시
기로 구분했다. 제1기는 불교가 국가로부터 억압받았지만 공인은 되고 있
던 성종 대까지, 제2기는 승정체계가 폐지되었지만 아직은 교법이 쇠퇴하
지 않고 명승도 배출된 인조 대까지, 제3기는 효종 대 이후로 교세가 완전
히 몰락하고 승려의 지위가 급락하여 사찰이 겨우 명맥만 잇고 불법이 거
의 사라진 시기로 정의하였다. 그는 “제1기부터 순차적으로 교법이 점차 쇠
퇴한 흔적을 기술하려 한다.”고 하여 이 책의 구성과 서술 방향에 앞의 시
기 구분론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이러한 부정적이고 편향된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조불교』에는 조선시대
불교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이 담겨있다. 조선 전기의 억불정책과 방임, 조
선 후기의 승역 활용 등 불교정책의 변천, 배불론과 호불론의 성격, 사십
구재와 수륙재 등 불교신앙과 왕실불교가 다루어졌다. 사회경제적 측면에
서도 승려 소유지의 문파 내 상속, 사찰계의 성행, 승역과 잡역, 사원경제
의 실상과 승려의 위상 문제 등이 거론되었다. 인물로는 조선 전기의 함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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