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P. 151
해체되면서 풀려났다. 그는 한국전쟁 때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고 이후에
도 글쓰기 활동을 계속했다.
최남선의 불교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
첫 번째 글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출간을 기념하는 「조선불교의 대관으로
부터 조선불교통사에 급함」(1918)이다. 이
글에서 그는 일본 학자뿐 아니라 조선 승
려들도 조선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서
무조건 경시한다고 비판하고, 자료 조사 사진 1. 육당 최남선.
와 근대적 연구방법론에 의한 학술연구
가 시급함을 역설했다. 나아가 한국불교가 불교 유통에서 중요한 계통이
며 결론적 불교로서 교(교리)보다 학(연구)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고 보았
다. 당시 일본 학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한국불교가 중국과는 다른 특수하
고 독자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높이 평한 것이다. 또 한국사와 불교는 떼려
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서민의 정신생활과 사회의 심령적 발전 측면에서
도 불교가 유교보다 큰 역할을 했고 사회 세력과 문화적 영향력 또한 매우
컸음을 강조했다. 당시 최남선은 학문을 통한 민족의식의 함양과 고취를
추구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불교 전통에 대한 재해석과 가치 제고에 앞장
선 것이다.
이후 최남선은 1930년 7월 하와이에서 개최된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때 발표된 「조선불교- 동방문화사상에 있는 그 지위」라는 글을 썼다. 비록
직접 가지는 않았고 최봉수의 영문 요약본을 도진호가 배포했지만, 동아시
아에서 한국불교가 갖는 위상과 특성을 부각하여 소개했다는 점에서 큰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