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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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우이 하쿠주. 사진 2. 우이 하쿠주, 広辞苑에서.
현 출신으로 어릴 때 조동종 사찰인 동점사(東漸寺, 도요가와시 소재, 사진 3)
에서 출가하여 후에 정식 승려가 되었다. 이노우에 엔료가 설립한 동경의
경북京北 중학교를 졸업하고, 동경대 문과대학에 들어가 다카쿠스 준지로
의 지도로 인도철학을 전공했다. 다카쿠스의 문하에는 1년 선배인 기무라
타이켄(木村泰賢, 1881-1930)이 와 있어 우이는 학문적 동지이자 라이벌로 평
생 함께 같은 길을 걷게 된다. 다카쿠스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그들의 재
능에 감탄했다.
우이는 문헌연구를 위한 주도면밀한 고증작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다. 1913년 조동종 해외 유학생 자격으로 유럽에 건너간다. 독일, 영국에
서 공부한 뒤 1917년 인도를 거쳐 귀국한다. 조동종 대학(현 고마자와 대학),
동경대 강사, 동북대와 동경대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업적은 한 마디로 인
도철학을 기반으로 불교학을 역사적, 학문적으로 체계화했다는 점이다.
우이가 활동하던 시기는 일본이 대외 전쟁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던 때
이다. 유학하던 시기 또한 유럽이 1차 세계대전으로 대혼란에 빠져들던 때
이다. 이 와중에서도 일본불교계는 불법의 영속성을 위해 인재양성을 소
홀히 하지 않았다. 폐불훼석의 고난을 불교학의 발전으로 상쇄시키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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