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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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고 이런 저런 고뇌와 번뇌도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상과 멱살 잡고 싸워온” 이 싸움은 시인이 결코 이
          길 수 없는 게임이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이길 수 있나! 시간이 흐르면 튼

          튼하던 이빨이 하나 둘 흔들리고 빠진다. 임플란트 해 넣어도 마찬가지다.

          ‘세월과의 싸움’에 이길 장사는 없다. 시인은 어느 순간 이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존재는 변하기 마련이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리를 “윗니 아랫니”
          때문에 ‘순식간에 문득 깨닫는다[頓悟]’. 그리곤 싸움을 그만 하겠다고 다짐

          한다. 제행무상의 이치를 터득하는 과정이 맛깔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싸

          움, 전화, 이빨 등 흔히 듣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들을 사용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단어로 ‘말 속에 말이 없는 깨달음’을 은유적이고 압축적으로 표
          현했다. 그래서 시 전체가 ‘활구活句’가 됐다. 참구參究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도구’인 ‘화두話頭’로 승화됐다. 시가 질적質的으로 변한 것이다.

           ‘의미 없는 말[無義語]’을 사용해 시詩를 ‘활구’로 만드는 기법은 곳곳에 보
          인다. “저/ 무덤으로/ 걸어가는 진리만큼/ 분명한 건 없더라/ … 나대로 너
          답게/ 살다가 죽어야지/ 그러다 저 무덤으로 가자/ 저곳이 스승이고/ 저분

          이 학교장이다”(「학문은 항문이다」); ““나처럼/ …/ 눈 떼지 마라,/ 무상 앞에

          서/ …,/ 너도 곧 종점이다””(「뒤도 안 돌아보고 내렸다」) 등등. 그렇다고 시인이
          죽음 앞에 주눅 들거나 삶에 자존감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열심히 살
          았다고 자부한다.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가 대표적이다.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쩌라고
              너는 너대로 살았잖아

              그런데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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