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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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로 바꾸는 등 여러 개혁을 추진했다. 한편 그는
             연구에도 전력을 기울여 1905년 『대범천왕문불
             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経』이 위경임을 논증한 문

             제적 논문을 발표했다. 이 『불결의경』은 부처가

             교학 외에 별도로 선을 전했다는 교외별전, 부처
             가 꽃을 들자 제자 가섭이 빙긋 웃으며 마음을 이
                                                            사진 1. 누카리야 가이텐.
             어받았다는 염화미소 등의 전거가 된 경전으로,
               이 책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이라는 주장은 선종이 기

             대어온 경전상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1911년에는 조동종에서 서구의 종교학술 시찰을 보내 3년간 외국에 체
             류하게 되었는데,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

             로 한 불교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1915년에는 일본정부로부터 국가학위

             로 문학박사를 받았고, 1919년에는 조동종 종립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1921년에는 학장에 취임했다. 이어 1925년에는 학제 변경으로 조동종립대
             학을 고마자와 대학으로 개칭하면서 초대 학장이 되었다. 이처럼 그는 활

             발히 공직 활동을 펼치는 와중에 연구를 지속하여 많은 저작을 펴냈다.

               누카리야의 전공분야는 선학이었고 대표작도 중국은 물론 인도까지 넘
             나드는 『선학사상사』 2권이었다. 그 밖에도 『선학강화』, 『선학신론』 등 선 관
             련 저작이 다수 있다. 그의 선불교관은 내성적 주관주의로 불리며, 초대 학

             장을 했던 고마자와 대학의 건학 이념도 실천과 학문의 일치를 뜻하는 ‘행

             학일여行學一如’를 내세웠다. 그의 선학 연구는 일본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알려졌는데, 일본의 선을 세계에 알린 스즈키 다이세츠, 중국 근대의 대
             표적 사상사 후스(호적)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누카리야는 불

             교 외에도 양명학이나 이슬람교를 공부하는 등 매우 폭넓은 지적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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