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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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기 때문인지 임제종과
간화선 위주의 한국의 선종 전통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특히 19세기 조선의 선 논쟁에
서 임제종을 가장 우월하게 높이고 조동종을
그 아래로 낮추어 본 선종 분류방식에 대해 조
목조목 반박하였다. 예를 들어 임제종이 연원
을 둔 남악 회양을 조사선의 종주, 조동종이
파생되어 나온 청원 행사를 여래선의 종주라
사진 2. 1914년 간행된 『달마와 양명』.
고 하여 전자를 높이고 후자를 낮춘 구분 방
일본 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
식을 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선교사』에서는 19세기 선 논쟁에서 자주 언급된 진귀 조사眞歸祖
師설에 대해 경전적 근거가 없는 가설이라고 논박했다. 또 선 분류의 주된
근거로 활용된 삼처전심三處傳心설이 위경에 근거한 후대의 조작이며 망설
이라고 비판했다. 진귀조사설은 부처가 선을 진귀 조사로부터 직접 전해
받았다는 주장으로 선법 전승과 관련된 한국만의 고유한 불교사 인식이
다. 고려 말인 1293년에 천책이 지었다는 『선문보장록』에는 『해동칠대록』이
라는 책을 인용해 9세기 통일신라의 선승 범일이 이를 언급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진귀 조사가 설산에 있을 때 석가에게 조사의 심인을 전하게
했다.”는 달마의 게송을 끌어와 실은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당시 교에 대한
선의 우위를 내세우고 그 근거를 확립하기 위해 제기된 주장이었다. 이후
진귀조사설은 청허 휴정의 「선교석」에서 교외별전의 근원으로 언급한 바
있고 선 논쟁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앞서 누카리야는 『불결의경』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임을 들어 염화
미소 등의 경전적 근거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선 논쟁에서는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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