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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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은 사람은 세월이 느리다고 답답해하네
나야 근심도 없고 즐거움도 없으니
2)
길건 짧건 한평생 살아갈 뿐이라오
백거이는 시를 지을 때마다 문자를 모르는 할머니에게 들려준 뒤 할머니
가 알아듣지 못한 부분은 알아들을 때까지 고쳐 썼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
지 서민적 감각을 중시했던 위대한 시인의 풍모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일자무식한 할머니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시이지만 그 속에 유유자적
하는 시인의 풍모가 드러납니다. 밥 먹고 차 마시는 가운데 시인은 즐거움도
없지만 근심도 없는 평온한 하루하루의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인
의 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헛다리를 짚기 일쑤입니다. 시는 종종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 상황을 이야기하기도 하니까요.
이 시가 지어진 때는 시인이 멀리 남쪽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어 있
던 시기입니다. 그는 주제넘게 직언했다는 게 빌미가 되어 조정에서 밀려나
좌천되었으니 시에서는 ‘근심도 즐거움도 없다’지만 실제 심정은 그렇지 않
았을 것입니다. 이 시기 이후부터 시인은 불경과 노장 서적을 열심히 읽고
‘얼굴에 근심과 기쁨의 기색 드러내지 않고, 가슴으론 시시비비를 깡그리
없앤’ 채 세속의 욕망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다경』을 쓴 육우(?-704)는 끽다의 의례화 된 행위가 삶의
자각과 찬미 행위라 믿었습니다. 육우는 차를 마시는 순간은 일상의 다망
함에서 벗어나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기회이며, 차 의식을 인생의
2) 白居易 「食後」, “食罷一覺睡 起來兩甌茶 擧頭看日影 已復西南斜 樂人惜日促 憂人厭年賖 無憂無樂者
長短任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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