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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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을 하게 되면 평소와 다른 힘이 작용한다. 이 때문에 회전하는 놀이기구
에서는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진다. 멀미하기도 한다. 정지해 있거나 일정
한 속도로 움직일 때와는 달리, 새로운 물리현상이 나타난다. 찻잔의 물이
밖으로 흘러넘쳐서, 물을 가득 채울 수 없다. 시계추의 진동주기도 달라진
다. 새로운 물리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뉴턴과 칸트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 물이 들어있는 양동이를 회전
시키면 원심력이 생긴다. 이 힘이 물을 밖으로 밀어내어, 물 가운데가 들어
가고 가장자리가 올라간다. 물의 표면이 편평하지 않게 되며, 물을 가득 채
웠다면 물이 밖으로 흘러넘친다. 원심력은 회전하는 물체에 생기는 관성력
이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회전인가? 공간에 대한 회전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뉴턴역학의 회전이다. 뉴턴은 회전을 절대공
간에 대한 회전이라고 생각했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시간과 공간은 우주 전체에 깔린 배경과 같다. 이를
수용한 칸트는 공간이나 시간을 외적 경험에서 끌어낸 경험적 개념이 아
니라고 보았다. 그건 선험적으로 자명한 것이었다. 『순수이성비판』에 의하
면,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은 직관의 근저에 놓여있는 필연적이고 선천
적인 표상이다.
뉴턴과 칸트의 세계관에서 시간과 공간은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화폭
과 같다. 화폭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바탕
이 있어야 존재자의 있음과 존재의 구조가 가능해진다. 화가가 그림을 그
리기 전에도 화폭이 존재하듯이, 존재자의 있음 이전에 시간과 공간이 펼
쳐져 있어야 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화폭이 있어야 하듯이,
아무것도 없는 빈 우주라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은 있어야 한다. 그건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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