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9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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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근대에
             와서는 신해혁명 이후에 중화민국
             인주국印鑄局에서  관원으로  20년

             가까이 근무하기도 했던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1875-1953) 선생이 옥
             저전을 제일 잘 썼다.
               상왕산(307.2m)의 상왕象王이라

             는 말은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 붓다가야BuddhaGayā,
             즉 보드가야Bodh-Gayā에 있는 가
             야산伽倻山의 정상이 코끼리의 두

             상과  닮았다고  하여  상두산象頭             사진 11-2. 개심사 사직사자도 2.

             山이라고도 부른 것에서 왔다. 개
             심사 인근의 가야사伽倻寺가 있는 남쪽 주봉인 가야산(667.6m)과 개심사가
             앉은 북쪽 주봉이 이어져 있어 이를 가야산과 같은 뜻이면서 말이 다르게

             상왕산으로 명명한 것이다. 상왕 즉 붓다가 있는 산이라는 말이다. 안양루

             와 마주 보는 종각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안양루는 돌아서면 겸손한 해탈문
             이 나온다(사진 6). 해탈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보
             전을 맞이한다. 지상에 바로 세운 안양루를 뒤로 하고 앞을 향해 바라보면

             앞으로는 오층금당탑과 대웅보전이 있고, 왼쪽에는 심검당尋劍堂이, 오른쪽

             에는 무량수각無量壽閣이 있다. 이 건물은 모두 조선시대의 것인데, 금당인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과 무량수각의 당우를 놓고 그 전방에
             누각건물을 배치하고 있어, 조선 초기의 가람배치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진 7). 명부전冥府殿이나 팔상전八相殿 등의 전각들은 대웅보전과 안양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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