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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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는 일직선상의 가람배치 양식에서는
벗어나 있다.
대웅보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시
는 곳이다. 그런데 내부에는 아미타불
과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량수전이나 아미타
전阿彌陀殿 또는 극락전極樂殿으로 이름
을 바로잡든지 아니면 아미타불을 다
른 전각으로 옮기고 대웅보전에는 석가
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옳다. 현재 대
웅보전 건물은 조선 성종 6년에 충청도
절도사 김서형金瑞衡이 사냥을 왔다가
산불을 내는 바람에 개심사가 불타 대
사진 12-1. 개심사 범천도1.
웅전이 소실된 것을 9년이 지나 1484년
성종 15년에 중창한 것이다. 그렇지만 대웅전에 모신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
造阿彌陀如來坐像은 좌상의 저부에서 확인된 봉함목 묵서명에 의해 1280년
고려 충렬왕(忠烈王, 1274-1308) 6년에 불사를 위해 특별히 설립된 승재색僧齋
色의 주관 하에 내시 시흥위위內侍詩興威衛의 장사長史 송씨宋氏가 보수를 담
당한 것으로 밝혀져 이 불상은 그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
존하는 고려 후기의 목불木佛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불일 수가 있으며, 조
각적으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시대 건물에
고려시대 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셈이다(사진 8).
성종 8년인 1477년에 건립된 심검당은 그 남쪽으로 ㄴ자형의 다른 요사
와 함께 연결되어 있는데, 제멋대로 휜 목재를 적절히 사용하여 오히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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