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9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P. 179

사진 2. 『장요』 전22권.

             거, 예증이라는 논리 방식의 세 부분을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 인명한 연구

             에 몰두하였고, 1928년 집중적으로 인명학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내학』

             에 티베트어 역본으로 남은 디그나가(陳那, Dignāga, 480-540)의 대표작인 『집
             량론본』과 『집량론석』을 편역한 『집량론석약초集量論釋略抄』를 실었다. 이들
             책은 당대에 의정(義淨, 635-713)이 번역한 적이 있었지만 그 한역본은 오래

             전에 일실되어 전해오지 않았는데, 근대에 여징이 다시 한역한 것이다. 인

             명에 관한 그의 저서로 『인명입정리론강해因明入正理論講解』(사진 3)도 유명하
             다. 여징의 이러한 작업은 인명학이 부활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티베트불전 연구와 그 영향



               중국 근대의 불교연구는 한문 불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산스크리트
             어나 팔리어 불전 연구는 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반면에 티베트 불전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는 중국불교 전통 속에 티베트

             불교가 이미 존속했고 티베트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에 기인하기도 하
             지만, 서구 문헌학이 수입되는 과정에서 티베트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도 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징 역시 근대불교학의 한

             부분으로서 티베트불교를 연구하였다. 티베트불교가 근대 시기 본격적으



                                                                         177
   174   175   176   177   178   179   180   181   182   183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