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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등장한 것은 밀교의 부흥과 관련이 있다. 근대시기
밀교에 대한 관심은 1920년대에 특히 고조되었다. 당시
불교부흥 운동을 주도하였던 양문회는 당대唐代 유행하
였던 밀교가 송대 이후에 단절되었고 그 전통은 일본에
서 지속되었던 점을 지적하며 밀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에스토니아 출신 불교 문헌학자인 스탈홀스타인은
1917년 중국에 도착해 1937년 사망할 때까지 중국에 체
사진 3. 『인명입정리론강해』. 류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산스크리트어를 강의하고 산
北京: 中華書局, 2007.
스크리트불전과 티베트불전을 연구하였다. 그가 중국에
서 발표한 티베트불전 연구는 중국 근대불교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여징의 친구이기도 한 최초의 중국인 제자인 황수인(黃樹因, 1898-1923)은
산스크리트와 팔리어뿐 아니라 티베트어를 공부하였다. 그는 여징이 산스
크리트어와 티베트어를 공부할 필요성을 깨닫고 한문불전을 넘어 티베트
불전 연구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여징은 “매년 겨울과 여름방
학에 황수인은 남경으로 돌아와 우리에게 북경에서 산스크리트어와 티베
트어를 배우는 상황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느끼는
바가 있어 이 두 언어를 독학으로라도 배우리라 결심하였다.”고 하였다. 스
탈홀스타인과 그의 몇몇 제자들은 서구 불교문헌학의 영향 아래 티베트
불전을 연구하였지만, 이들과 달리 여징은 전통적인 교감학과 서구 불교
문헌학의 간접적인 영향 아래 티베트불전 연구를 진행하였다. 티베트불전
연구를 계기로 티베트불교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시도하였고, 1933년에
는 『티베트불학원론西藏佛學原論』(사진 4)을 간행하였다.
“나는 황수인에게 부탁해 산스크리트어 사전과 티베트어 사전을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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