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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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일종의 해석학적 맴돌이 현상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연구대상이 된 교
학‧선학의 문헌과 용어, 논리 안에서 뱅뱅 돌다 그친다. 언어와 이론 범주가 대
부분 과거에 갇혀 있다. 구도의 현장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목격된다. 화자話者의
이해나 안목을 파악할 수 없는 언어방식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간화선 학인
들 사이에서 특히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화자話者 입장에서는 수행으로 성취
한 내용과 수준 및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 청자聽者 입
장에서는 화자의 성취 내용을 평가할 수 있는 불교적 기준이 공유 가능한 내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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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의 선종이 생명력을 유지‧강화하고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성철은 한문에 기반한 전형적인 전통 간화선문看話禪門의 언어방식과 한국어
의 현재 언어방식을 모두 구사하고 있다. 상당법어上堂法語들은 전자에, 『백일법
문百日法門』이나 『선문정로禪門正路』 등은 후자에 해당한다. 『백일법문』은 녹취된
구두 법문을 글로 옮긴 것이라서 전형적인 현재인들의 한국어 유형이다. 『선문
정로』는 접속어 정도만 한글로 된 한문 현토형이다. 한문으로만 글을 쓸 수 있는
세대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기도 하고 한글이 기본으로 채택되는 세대에도 속하
는 인물이 취할 수 있는 언어방식들이다. 특히 성철은 문어文語가 한문에서 한글
로 교체되는 이중문어二重文語 시대에 속하면서 전통한문을 체화시킨 익힌 인물
이고, 일본어‧영어 등 외국어 능력도 확보한 다중언어 능력자였다. 그런 그가
불문佛門에 남긴 언어방식은 위의 두 가지이다. 성철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인
들은 성철이 소속된 언어환경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성철의 상당법
어上堂法語처럼 한문에 기반한 전통 간화선문看話禪門의 언어방식을 구사하는 경
53) 「‘깨달아 감’과 ‘깨달음’ 그리고 ‘깨달아 마침’」(『깨달음, 궁극인가 과정인가』, 운주사, 2014. 161-248)은 이런 문제에 관한 필
자의 소견을 밝힌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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