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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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돈오나 간화선을 비롯한 선종의 모든 언설을 ‘반야공‧중관의 부정논리

             를 독특한 방식으로 펼치는 것’으로 이해하는 시선이다. 선종 어록이나 화두를
             해설하는 경우에 가장 많이 목격하게 되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선어禪語를 ‘공의

             이해를 펼치는 특징적 언설’로 보기 때문에 선종의 선관을 결국 반야‧중관 통찰
             의 범주로 치환시켜 버린다. 다른 하나는 ‘화두 집중주의’라 할 수 있는 시선이다.

             간화선 화두 참구와 직지인심 돈오의 인과적 연관에 대한 성찰이나 해명 없이 그
             저 <화두에서 생기는 의심에 집중하다 보면 돈오견성한다>고 보는, 집중 만능주

             의적 시선이다. 이런 집중주의 시선이 유식의 언어와 결합되는 경우, <화두 의심

             에서 수립되는 고도의 집중력이 마침내 제8아뢰야식의 층까지 뚫어 불변의 궁극
             실재를 보게 하는데, 이것이 돈오견성이다>라는 식의 신비주의 선관禪觀이 되기

             도 한다. 이 신비주의 시선은, ‘제8아뢰야식의 번뇌에서도 벗어나야 참된 견성’
             이라는 성철의 언어를, ‘모든 식識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불변의 궁극실재에 관

             한 소식’으로 읽어버린다. 화두 의심의 수승한 집중력을 돈오의 원인으로 보는
             것은, 붓다의 사마타 수행을 집중수행으로 간주하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시선은 집중이라는 기능적 힘과 연기‧중도/돈오의 지혜 국면을 인과적으
             로 연결하기가 어렵다. ‘집중의 힘’과 ‘연기‧중도/돈오의 깨달음’을 비약적으로

             결합시키는 상상 이상의 설명이 되기 어렵다. 양자를 이어주는 인과관계의 고리
             를 확보하여 수긍할 수 있는 인과적 설명을 제시할 수 없어 비판과 반론 앞에 무
             력하다. 필자는 선종 선어禪語에 대한 이 두 유형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선

             종 선어의 초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여, 간화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선어의
             생명력을 살리지 못하는 관점들이라 본다. 앞서 거론한 ‘이해와 마음의 차이와

             관계’에 대한 성찰을 충실히 수립하는 것은 이 두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요
             긴하다고 생각한다. 성철의 간화선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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