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P. 107
한 선종의 관점을 돈오頓悟의 문제로써 다루면서 ‘마음방식의 선 수행’에 관한 선
종의 안목을 개진하였고, 인도불교 전통을 대변했던 까말라씰라(Kamalaśĩa 蓮華
戒, 740?-795?) 측은 유가행중관파의 시선을 계승하면서 ‘이해방식과 집중수행’의
결합으로써 선 수행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펼쳤다.
티베트 논쟁을 흔히 인도불교의 점문漸門과 중국 선종의 돈문頓門의 대립으로
기술한다. 그리고 점문은 ‘연속적 행법에 의한 점차적 성취’를, 돈문은 ‘비연속적
인 행법에 의한 단박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논쟁의
실제 내용을 보면, 인도불교 측 점문漸門은 <‘대상(所緣)집중 행법’(무분별영상, 사마
타)과 ‘이해사유 행법’(유분별영상, 위빠사나)의 지속적 축적을 통한 무분별지의 성취>
를 주장하는 것이고, 선종 마하연 측 돈문頓門은 <‘마음시선 바꾸기 행법’(看心)을
통해, 분별의 개념환각을 붙들고 쫓아가는 마음지평‧계열‧범주로부터의 해방
을 생각마다 단박에 성취하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이 두 시선의 차이가 끝내
평행선을 달린 것이 티베트 논쟁의 전말이다.
까말라씰라에게 있어서 사마타(止) 수행은, ‘선택한 특정 대상에 마음의 시선
을 붙들어 매어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어서, ‘그 대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
고’(무분별영상) 그저 ‘마음이 산만하거나 동요하지 않게 집중시켜 가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위빠사나(觀) 수행은 ‘대상의 속성이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사유
관찰’로서 ‘대상을 공성空性으로 이해하는 사유를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켜 가
는 지적 노력’이다. ‘집중으로 인한 마음의 안정’(止)과 ‘지적 성찰로 인한 이해의
계발’(觀)이 상호작용하여, 모든 개념환각(희론)에서 풀려나고, 마침내 궁극적 지
혜가 드러나는 최고의 깨달음 경지를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말라씰
라의 수행론은 비단 대승불교 유가행중관파의 관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