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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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선관이다. 원효는 ‘이해와 마음의 통섭적 지위’인 일심一心으로써 이러한 선
관을 품는다. ‘빠져들지 않는 마음 국면/자리’에서 기준‧관점‧이해들을 ‘사실
그대로’에 상응하는 이로운 것으로 만들어가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일심이다.
그런 점에서 원효의 선관은 붓다의 선과 잘 통한다.
돈오頓悟는 이러한 선종 선관의 단적인 표현이다. 돈오에 관한 필자 생각의 요
지는 이렇다. <근본무지를 조건 삼아 형성된 마음의 범주‧계열‧문법 ‘안에서’
왜곡과 오염을 수습하려는 모든 노력은, ‘차츰차츰‧점차로‧차례대로‧단계
적’이라 할 수 있는 개량적 개선이다(漸). 그것은 마음을 왜곡‧오염시키는 문법
이 유효한 범주 내에서 성취되는 향상이라는 점에서, 아무리 수준 높은 것일지라
도 여전히 왜곡과 오염의 문법 안에 놓여있다. 반면 그 문법체계에 ‘갇히지 않고
빠져들지 않는 마음 자리/국면’으로 이전하는 것은, ‘단박에‧몰록‧단번에‧한
꺼번에‧갑자기’라 할 수 있는 ‘전면적으로 빠져나옴’이다(頓). 이 전면적 국면전
환과 자리바꿈은 현상을 왜곡하고 오염시키던 마음의 문법 전체에서 풀려나는
자리이동이기에, 계열의 비非연속적 이탈이고, 범주이탈적 자리바꿈이며, 지평
의 전면적 전의轉依로서, 돈오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흥미로운 것은, ‘갇히지 않고 빠져나오는 마음 자리/국면’ ‘휘말려 들지 않으
면서 대상(境界, 지각된 차이현상들)을 만나는 마음 자리/국면’을 일깨워 주는 선종의
언어방식이 붓다의 방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붓다는 심신에서 발생하는
경험현상을 ‘행위(身)와 관련된 현상’‧‘느낌(受)과 관련된 현상’‧‘마음상태(心)와
관련된 현상’‧‘이해/지식(法)과 관련된 현상’의 네 부류로 구분한 후, 그 현상들
을 ‘괄호 치듯 묶어 알아차리는 국면’을 일깨워 간수해 가는 정지正知 행법을 설
한다. 예컨대 행위와 관련해서는 <나아가는 동작, 돌아오는 동작, 앞을 보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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